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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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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 측백나무잎은 평면이다. 납작하게 눌러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가지가 수직으로 자라고 잎이 옆을 향해 나서 측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가지런하게 쌓아놓은 잎을 본 건 성지주일 미사시간이다. 납작한 측백나무잎이 성당 문앞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 성지 가지로 쓰였던 잎이 측백나무잎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축성 받은 측백나무를 집에 가져와 안방에 걸려있던 십자고상에 푸른 잎을 꽂아 놓았다가 누렇게 말라 부서질 것 같은 측백나무를 재의 수요일에 태웠다. 그렇게 미사시간에만 봤던 성스러운 측백나무가 요즘은 아파트단지에서 종종 눈에 띈다. 꽃이 필 것 같지 않은 푸르기만 한 측백나무에도 꽃이 피고 있었다. 암꽃, 수꽃이 다르다. 푸른 잎과는 다르게 꽃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다. 파랗게 맺혀 있던..
백합 화단에 백합 꽃이 하얗게 폈다. 단지 주변이 백합 향기로 꽉 차 있다. 넓은 공간을 꽉 채우는 진한 백합 향기는 참 오랜만이다. 시골집, 우리 집을 오르기 전 그 댁 안마당엔 백합 꽃이 반들반들한 황토가 깔린 마당 한 켠을 하얗게 꽉 채우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 꽃집에서 본 백합과는 달랐다. 야생화처럼 야무지게 핀 백합 꽃 향기가 비탈길까지 따라 올라 왔다. 미사 시간에 제대에 꽂혀 있던 백합은 그 진한 향기 때문인지 방안에 꽂아 놓았던 적은 없었다. 꽃을 꽃병에 꽂은 적이 없으니 꽃은 핀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당연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당 한 켠에 꽃이 있거나 울타리처럼 오가는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렇게 백합꽃도 그댁 마당에 펴 있는 것을 오며 가며 우리 집 꽃인 듯 보고는 했..
가죽나무 이른 봄, 꽃을 찾아다닐 무렵이었다. 계곡이 눈부실 정도로 환해서 벚꽃이 벌써 폈나 하고 가까이 가보니 가죽나무 마른 씨가 꽃이 핀 것처럼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계곡을 따라 주변에 가죽나무가 있다. 내가 본 가죽나무는 다 커다란 고목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던 느티나무 같이 계곡을 꽉 채우고 있는 나무가 가죽나무다. 계곡 사이에 놓인 다리를 건널 때면 가죽나무꽃을 볼 수 있다. 눈꽃송이 같은 꽃이 필 때면 엄지손톱만 한 곰 같은 벌이 날아들기 시작하고 가죽나무 그늘로 물가가 서늘해진다. 나물로 먹기도 하고 장아찌를 담아 먹기도 하는 새순이 꽃이 필 무렵이면 도톰해진 잎이 만들어놓은 플라스틱 모조품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 한다. 잎은 먹거리로 씨는 차로. 저근백피라는 약재로..
향나무 집 뒤, 북한산 둘레길에 있던 향나무가 눈에 설지 않다. 옛날, 우리 집 울타리에 있던 향나무와 닮았다. 담장이 없던 우리 집 울타리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향나무가 빈틈없이 집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누렇게 낙엽 진 향나무 잎이 향나무 울타리 밑에 차곡차곡 깔려 있었다. 향나무에 찔릴까봐 울타리 주변에는 가지 않았었다. 끝이 뾰족했던 가시로 듬성듬성 빈틈이 있던 울타리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향나무가 장마가 지기 시작하면 늘어지기도 하고 그 비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면 톱으로 잘라 사랑방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고는 했었는데 향나무 가지가 타는 냄새가 얼마나 좋았던지. 향냄새로 눅진했던 집안이 맑아지고는 했다. 제사상에서 태우는 가늘게 쪼개놓은 향은 깊고 깊은 산속 개 짖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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