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익은 녹두를 한낮에 딸 때면 꼬투리가 터져 바구니로 들어가는 녹두보다 튀어나가는 것이 반이었다. 너무 익어 바삭 마른 녹두꼬투리는 손을 댈 새 없이 초록색 얼굴을 내밀며 사방으로 튀었다.
우리 집에선 녹두를 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밭두렁 차지는 녹두였다. 산인지 밭인지 모를 경계를 녹두가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집은 녹두를 팔기보다는 집에서 먹기 위해 심었던 것 같다.
볍씨만한 녹두를 따는 데로 모아두었다가 추석이나 설, 아버지 생신 때나 손님이라도 오시는 날이면 녹두전을 부치고는 했다. 녹두를 맷돌에 들들 갈아 쌀을 조금 섞어 불렸다가 다시 맷돌에 갈아 녹두전을 부치셨다.
들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그 반죽을 한 국자씩 넣고 하얗게 절인 배추를 올려 노릇노릇하게 지진 녹두전을 아버지가 좋아하셨다. 우리 집은 숙주나물도 좋아해 자주 먹었지만 숙주나물보다 녹두전을 더 많이 먹고는 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파 약을 먹거나 보약을 먹을 때면 엄마는 녹두가 해독작용이 있어 약 효과가 떨어진다고 하시면서 녹두로 만든 음식은 밥상에서 멀리 치워놓으셨다.
엄마가 도토리묵 다음으로 많이 쑤셨던 묵 중에 하나가 청포다. 겨울이면 김장김치만큼 많이 먹었던 도토리묵과는 달리 흰빛에 맑고 깨끗했던 청포는 아주 특별한 날만 맛 볼 수 있던 귀한 음식이었다.
간병을 하며 당뇨식에 나온 녹두죽을 보고 약을 먹는 환자식에 녹두죽이 나와 영양사를 책망했었는데. 인슐린 분비를 촉진한다니 합병증으로 다른 약을 먹지 않는 경우라면 당뇨에 좋은 음식 이구나한다.
녹두 꽃말을 찾아보니 강인함, 단단함이다. 우리 엄마는 녹두밥을 하실 때도 맷돌에 갈아 계피를 해서 밥을 지으셨는데 그 단단한 껍질 때문에 갖게 된 꽃말은 아닐까싶다.
밥을 해도 익지 않는 녹두는 돌녹두라고 했다. 녹두를 제 때 따지 못해 서리를 맞으면 돌녹두가 된다고 말씀하셨었다. 서리 맞은 사과는 꿀사과가 되고 서리 맞은 검정콩은 서리태가 되어 맛이 더 깊어지는데 녹두는 예외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