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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를 가장 잡기 쉬울 때는 이른 아침이다. 책가방을 메고 논두렁길을 따라 학교를 갈 때면 논에 가득 찬 볏 잎 위에 앉은 잠자리들은 아침이슬에 날개가 푹 젖어 있었다. 죽은 듯이 앉아있는 잠자리 날개 위에서는 송글송글 맺힌 이슬이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끝이 뾰족한 잎이라면 잠자리가 다 앉아있었던 것 같다. 손만 뻗으면 다 잡을 수 있었다. 뛰어가지 않으면 지각을 할 수 밖에 없는 빠듯한 시간 때문에 보고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날지 않는 잠자리는 학교를 신경 쓸 만큼 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가 공중에서 무리를 지어 뿌옇게 날아다니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다 서늘해진 몸을 데우며 느긋하게 잠자리채를 휘둘렀다. 마음만 먹으..
무, 무꽃 이맘 때 김장철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포기 배추와 함께 땅속에서 김장 무도 실해진다. 무 하나를 뽑으면 혼자 먹기 버거울 정도다. 그때는 그랬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허기질 때면 어느 댁 밭고랑에서 무 하나를 뽑아 무청은 잘라 밭고랑에 버리고는 팔뚝만한 무를 밭둑에서 말라가는 풀에 쓱쓱 닦아서는 이빨과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가며 파란 부분부터 깨물어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 먹지 못한 무는 벼를 베고 난 텅 빈 논에 던져버렸다. 남의 집 밭에 무도 우리 집 무라도 되는 듯 누구나 그렇게 뽑아먹었다. 흙에서 드러난 뽀얀 무가 참 많았었다. 그야말로 밭 가득 무만 있었다. 짠지도 담그고 김장속도 만들고 남은 무는 움 속으로 들어갔다. 그 무도 꽃이 핀다는 것은 한참 지난 뒤에 알았다. 장아리 꽃이 무..
매미 매미 꽃 사진을 찍다 반가워서 찍은 곤충들을 모아 여름방학숙제를 하듯. 곤충채집통에 잡아두었던 곤충들을 이젠 알콜 주사를 놓고 핀으로 찔러 하얀 마분지에 고정해 방학숙제를 냈던 것처럼 바삭 거리는 곤충들을 벽에 걸 듯 걸어보려 한다. 그때는 방학 때면 더 들로 산으로 나가 뛰어놀았다. 곤충들과 다를 것 없이 나무를 오르내리면서 날기도 하고 기기도 했었다. 매미, 잠자리, 나비, 사마귀와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렇게 하루가 짧게 놀았었다. 그 추억을 조금이라도 이 곤충채집통에 담아둘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것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내게 온 선물 같은 곤충들도 꽃과 열매와 함께 서울 나들이를 하듯 세상구경을 시켜보려고 하는 것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잡았던 옛날 내가 ..
새콩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건지. 달린 콩꼬투리가 영글기 시작하면서 새가 새콩 덩굴에 둥지를 튼 듯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새콩 주변에 모든 참새가 모인 것처럼 새소리로 시끌시끌하다. 요즘 그렇더니 새콩 꼬투리가 툭툭 터져 콩이 튀어나가고 없다. 북한산둘레길 인도 옆에 새콩 꽃이 노랗게 폈다졌다. 노란색 새콩 꽃은 사진에 잘 담기지가 않아 애를 태우는 꽃 중에 하나다. 새콩 덩굴은 열매가 이제 붉게 변해가는 남천을 타고 올라가서는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둘둘 감듯 남천나무를 말고 있다. 새콩 주변에 나무들은 얼마나 갑갑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새콩 저는 생기발랄한 모습이 천상 어린아이, 철없는 모습이 풋풋하다. 철없는 아이처럼 저만 생각하고 넓게 더 넓게 제 영역을 넓혀 놓았다. 새콩이 노랗게 폈던 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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