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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대 산나물을 뜯어오신 엄마는 행주치마를 풀어 나물 속에 있던 꿩알을 꺼내시면서 잔대 뿌리를 나물 뜯던 창칼로 쓱쓱 껍질을 벗겨 주시고는 했다.  도라지 같은 뿌리를 보며 고개를 뒤로 빼면 엄마는 그러셨다. “잔대야. 아리지 않아. 먹어봐.” 하시던 엄마. 정말 아리지 않았다. 도라지 뿌리보다 포실하면서 달착지근 맛이 그냥 먹기에도 좋았다.  잔대 뿌리는 늘 나물 속에서 찾아 날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환절기마다 크게 잔병치레를 안 하고 지나갔던 것은 잔대 뿌리 덕분은 아니었을까.  잔대꽃을 이제 보고도 못 알아 본 건 당연한 것 인지도. 산나물 속에 늘 잔대 뿌리가 있기도 하고 잔대 싹이 있었으니. 그때는 꽃이 더 귀했을 것이다.  잔대 꽃을 보고 있으면 바람이 부는 듯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휘 부는 ..
각시 원추리 산길에 봤던 그 원추리다. 원추리 꽃도 크게는 각시 원추리와 왕 원추리로 구분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내가 산길에서 봤던 원추리는 끝이 더 날렵하고 더 작았다. 그 원추리가 각시 원추리라고 한다. 각시 원추리는 주황색 꽃이 더 맑고 깨끗하다. 빛이 비출 때는 더 맑고 투명해진다. 줄기도 더 길고 난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산길에서는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각시 원추리 꽃이 폈었다. 이른 봄에 눌러놓은 듯 납작하게 올라오는 새싹은 연둣빛으로 산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면서 나물캐던 엄마 앞치마 속에 들어있었다. 각시라는 앞머리가 붙은 건 부인병치료에 좋아 붙은 이름일까. 알고 보면 산과 들에 나는 풀이 약초 아닌 것이 없는 것 같다. 새싹으로도 먹고 묵나물로도 먹고 뿌리째 캐어 약으로도 쓴다...
왕 원추리 산을 몇 고개를 넘어야 학교를 갈 수 있었다. 그 길에서 봤던 가녀리게 폈던 원추리는 각시원추리라고 한다. 엄마가 봄이면 뜯어 오셨던 산나물에 원추리 싹도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단지 화단을 꽉 채우며 나던 예쁜 싹은 왕원추리라고 한다. 산길에서 봤던 원추리와는 색깔도 다르고 꽃 크기도 다르다. 그렇게 큰 원추리꽃은 서울 와서 처음 본다. 화훼용으로 사랑받는 꽃 중에 하나가 왕원추리꽃이다. 봄이면 화단에서 봄이 왔다고 삐죽삐죽 고개를 내미는 싹 중에 대부분이 보라색 꽃이 피는 비비추 다음으로 많은 것이 왕원추리 싹이지 싶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사진도 많다. 보이면 찍었다. 싹이 날 때는 황량했던 화단에 새싹이 예뻐서 찍고 좀 자라서는 난초처럼 늘어진 싹이 예뻐서 찍었다. 화단에 푸릇푸릇 ..
상사화 상사화는 꽃이 먼저 핀다. 회초리를 꺾어 껍질을 벗겨 놓은 족제비싸리 같은 줄기에서 분홍색 꽃이 핀다. 줄기 끝에 빨간 꽃봉오리가 대림절 초에 촛불을 밝히듯 맺혔다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면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대 하나에 여러 송이의 꽃이 연달아 피기 시작하면 볼품없이 튼실하기만 했던 꽃대가 이해가 된다. 상사화. 꽃이 먼저 폈다가 지고 나면 그 자리에 잎이 난다고 했다. 꽃이 지고 난 뒤에도 그 자리에 자주 갔었는데. 상사화가 질 무렵이면 화단 주변에 꽃과 푸른 잎으로 꽉 들어찬다. 주변에 다른 꽃에 정신이 팔려 상사화 잎을 보지 못한 것이다. 연인의 그리움은 그토록 이방인은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이 지난 사진을 보면서 올해는 잎을 꼭 찍어야지 벼르다가 매해 그냥 지나고 만다. 그래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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