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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라일락꽃이 지고 나서일까. 그랬을 것이다. 라일락 나뭇잎을 손으로 비벼 친구들 입에 문대고 달아나곤 했었다. 그 맘 때 우리들은 다 알았다. 라일락 잎이 쓰다는 걸. 한 번씩은 서로에게 장난을 쳤던 것 같다. 지독하게 쓴맛. 그 쓴맛은 라일락 향기만큼이나 아주 길게 남았었다. 단맛은 꽃향기로 실려 보내고 고단함만 남았던 것인지 독하게 쓴맛이었다. 라일락이란 이름보다 수수꽃다리가 더 정겹다. 긴 줄기 끝에서 꼿꼿하게 서있다 익을수록 땅으로 고개를 숙이는 수수가 떠올랐을까.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가 빨간 수수를 닮았다. 우리 집에는 없던 라일락 꽃향기가 봄이면 집안에 꽉 찼었는데 몇 집 건너 한 집씩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봄이 되면 온통 라일락 꽃향기로 가득했다. 교실 창문을 통해 실려 온 향기로 학교 화..
홍화 홍화가 누렇게 씨방이 맺혔던 걸 보면 염색을 위해 홍화를 심었던 것이 아니라 농사지으신 분 말씀처럼 홍화씨로 차를 마시기 위해 심으셨던 것이다. 오래된 기와집 앞에는 옛날에는 마당으로 쓰였을 법한 곳에 텃밭이 있는데 그곳에는 매해 아욱 상추 쑥갓들이 세서 텃밭이 꽉 차게 꽃이 피고는 한다. 어느 해에는 그곳 밭 한 귀퉁이에 안개꽃이 하얗게 피더니 그 옆으로 홍화 꽃이 샛노랗게 폈었다. 처음 본 꽃이라 밭에 들어가 꽃을 자세히 보고는 했다. 엉겅퀴 같은 꽃이 노랗더니 붉게 변했다. 억센 가시가 돋친 잎을 만졌다가는 상처를 입을 것 같아 보기만 했었다. 지나갈 때마다 꽃 이름이 궁금했는데.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 텃밭 주인에게 물어보니 홍화라고. 몸에 좋아 차로 마신다는 그 홍화가 맞나 싶어 몇 번을 여쭤봤었..
뽀리뱅이 얼음이 풀리기 전 이른 봄에도 시골 우리 집 주변에 많았던 뽀리뱅이는 겨울을 이겨낸 탓인지 털옷을 입은 듯 폭신한 잎에 붉은 빛이 도는 파란 잎이었다. 이른 봄부터 호미를 들고 나가 나물을 뜯어오는 딸내미의 나물 바구니를 보시고는 엄마가 그러셨다. “한 끼 꺼리도 안 돼서.” 작은 바구니에 하나도 안 찬 씀밤귀, 냉이를 흡족해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뽀리뱅이를 캐오라고 하신 적은 없다. 집 주변에,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라서 그러셨을까. 우리 동네에선 뽀리뱅이를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마른 풀 속에서 붉그죽죽한 뽀리뱅이는 길가에서 아침이슬이 맺혀 바지 가랑이를 적시던 바랭이처럼 사람은 먹지 못하는 풀인 줄 알았다. 민들레나 토끼풀로 주던 씀바귀 종류처럼 사람은 먹는 것이 아니려니 했었다...
일본 잔대 일본 잔대 꽃 속에 도라지꽃이 숨어있었다. 따로 놓고 보면 크기며 색깔이 닮은 구석이 없는데 분류를 해 놓은 사진을 다시 봐도 도라지꽃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 오려냈다. 꽃이 활짝 핀 모습이 비슷한 각도에서 찍으니 헷갈린 것이다. 너무 밝게 찍어 도라지꽃이 엷다. 연보라색 도라지꽃이 일본 잔대 꽃이랑 똑 닮았다. 일본 잔대 꽃은 막 피기 시작할 때는 초롱꽃을 닮기도 했다. 초롱꽃이 창호지 꽃 같은 느낌이라면 보라색 일본 잔대 꽃은 양장점에서 맞춰 입은 외출복 같다. 줄줄이 피는 꽃이 이제 막 맞춤 정장을 차려입은 멋쟁이들이다. 꽃잎 끝에 곤두선 솜털을 보며 또 다른 느낌이다. 신비롭다. 사진의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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