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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꽃 벤자민 버튼

왕 원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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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몇 고개를 넘어야 학교를 갈 수 있었다. 그 길에서 봤던 가녀리게 폈던 원추리는 각시원추리라고 한다. 엄마가 봄이면 뜯어 오셨던 산나물에 원추리 싹도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단지 화단을 꽉 채우며 나던 예쁜 싹은 왕원추리라고 한다. 산길에서 봤던 원추리와는 색깔도 다르고 꽃 크기도 다르다. 그렇게 큰 원추리꽃은 서울 와서 처음 본다.

 

화훼용으로 사랑받는 꽃 중에 하나가 왕원추리꽃이다. 봄이면 화단에서 봄이 왔다고 삐죽삐죽 고개를 내미는 싹 중에 대부분이 보라색 꽃이 피는 비비추 다음으로 많은 것이 왕원추리 싹이지 싶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사진도 많다. 보이면 찍었다. 싹이 날 때는 황량했던 화단에 새싹이 예뻐서 찍고 좀 자라서는 난초처럼 늘어진 싹이 예뻐서 찍었다.

 

화단에 푸릇푸릇 싹이 참 예뻤을 때다. 산나물이라면 지금 딱 도려서 먹기 딱 좋겠다 싶을 때 어떤 분이 화단에서 왕원추리 싹을 잘라 데쳤다고 나물로 내온 적이 있었다. 초장을 찍어먹었던 것 같다.

 

그 왕원추리 싹을 먹으면서 꽃을 보기 위해 심었을 텐데 먹어도 되는 건지 한참 찜찜했었다. 화단이 허룩하게 잘렸어도 주홍색 꽃이 참 예쁘게 폈었는데.

 

왕원추리는 잎도 예쁘지만 꽃이 피기 시작하면 주변이 달라진다. 낮과 밤이 다른 수유리 같다. 가게마다 밝힌 화려한 조명으로 낮에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화려해지는 그 거리.

 

왕원추리 꽃은 꽃이 피면 딱 하루만 폈다 진다고 한다. 이어 달리기를 하듯 지면서 바톤을 넘겨주는 것이다. 지면서 또 다른 꽃이 폈던 것이다. 그 꽃인 것 같지만. 어제 그 꽃이 오늘 그 꽃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진마다 말라붙은 꽃과 화려한 꽃 그리고 크고 작은 꽃봉오리가 한 자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지면서 꽃이 피고 달려오길 기다리며 뛸 준비를 하고 있는 그렇게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날마다 봤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다. 아는 것이 아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각시 원추리꽃을 정리하다가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말이 떠올랐다.

 

각시 원추리꽃이 먼 친척 같은 꽃이라면 왕원추리꽃은 가까이 있어 이웃사촌 같은 꽃이다. 내일은 먼 친척 같은 각시 원추리꽃을 올리려고 한다. 각시 원추리꽃이 등잔불 같은 꽃이라면 왕원추리꽃은 전기가 막 들어올 무렵 빨간 전구로 밝힌 그 등불 같은 꽃이다.

 

추신 : 내 작은 이야기가 꽃을 보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한꺼번에 몰았다. 사진 찍은 보람이랄까. 왕원추리꽃을 보며 행복하다. 욕심껏 올리면서 날 위해 올리는 사진 같아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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