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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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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수수 우리 동네에서는 붉은 수수를 산밑 밭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만들 듯 심었다. 참나무와 경쟁이라도 할 듯 쑥쑥 자라던 수수 대는 꼿꼿하게 꽃을 피우다 붉게 수수가 익어갈 무렵엔 제 이삭이 버거워 고개를 떨구고도 세찬 비바람엔 애쓰고 있던 허리가 꺾이고는 했다. 푸른 옥수수 대와는 달리 붉은 수수 대에는 호랑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다가 수수밭에 떨어져 축축 늘어진 수수 잎이 호랑이 피로 얼룩졌다는 전설로 수수밭을 지나갈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수수 잎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는 했다. 소여물을 썰던 작두에 잘라 대나무 같은 껍질을 벗겨 씹어먹던 달디단 옥수수 대보다 더 달다는 수수 대를 꺾어 먹어본 적이 없다. 수수밭엘 들어서기도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호랑이가 나타날 것만 같아 수수..
당근꽃 당근꽃 당근꽃의 꽃말은 희망, 포기하지 않는 용기, 죽음도 아깝지 않으리라, 날 거절하지 마세요. 꽃말을 찾아 옮기다 보니 쓸쓸해진다. 내 입속으로 들어갔던 수많은 당근, 그 한해살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잘살고 있는 것인지.  밭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환상적인 연둣빛 당근싹은 한겨울 냉장고 안에서 새순을 틔우고는 했다. 당근을 먹을 때면 뾰족하게 새순이 난 윗부분을 잘라 물에 담가 놓았다. 당근싹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며 추운 겨울 봄을 재촉했었다. 그 빛은 봄빛이었다. 올해 처음 본 하얀 당근꽃은 당귀꽃, 방풍꽃, 톱풀꽃처럼 폈다. 가닥가닥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 같은 여린 당근싹은 꽃받침도 가는 실같은 싹으로 떠받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빨대 위에 구슬만한 흰공을 올려놓고 호호 불면 둥근 공이 동동 뜨..
물망초 물망초 내가 알고 있던 물망초꽃이 자주달개비였다. 성당을 올라가다 보면 바위틈에 자주달개비가 피어있었는데 그 꽃이 물망초꽃인 줄 알았다.  식물원에 갔을 때다. 동글동글한 모양에 파란 꽃이 예뻐 이름표를 보니 물망초였다. 그때 놀라움이라니. 이름을 보고 꽃을 보며 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잊지 마세요.’ 의 주인공을 그때 제대로 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주달개비와 많이 다르다. 착각할 수 없는 모습을 그렇게 오랫동안 착각했던 것이다. 파란 하늘이 물방울로 뚝뚝 떨어져 꽃밭에 맺혀 있는 느낌이다.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물망초, 제 이름을 꼭 닮은 꽃이 참 사랑스럽다. 쉽게 볼 수 없어 아쉽다.
델피늄 델피늄 델피늄의 꽃말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아름다움과 우정, 희망을 상징한다. 꽃봉오리가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델피늄이다.  바다에서 돌고래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던 오르토프스가 돌고래의 도움을 받아 폭풍우에 표류하는 아이를 구했지만 목숨을 잃었다. 이를 슬퍼한 돌고래들은 오르토프스의 영혼이 꽃으로 남겨지길 기도했다. 신은 돌고래들의 기도를 들어 오르토프스의 영혼을 델피늄 꽃에 담아 주었다고 한다. 전설 속의 오르토프가 그랬을까. 꽃을 보고 있으면 눈망울이 맑은 아이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다. 바다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모습. 전설은 꽃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분에서 핀 델피늄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파란 가을 하늘 같은 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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