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을 찍고/꽃 자서전

(266)
박태기나무 앙상한 나뭇가지에 쌀 톨 같은 꽃망울이 붉게 얼굴을 내밀었다. 꼭 강낭콩을 다닥다닥 매달아 놓은 듯이 가지에 빈틈없이 핀다. 굵은 가지에 점점이 꽃눈이 맺히고 긴 가지 끝에는 새순이 돋고. 묵은 나뭇가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툭 터진 꽃 색깔이 참 곱다. 설익은 강낭콩 꼬투리가 마르면 박태기나무에 씨방 같을지도 모르겠다. 박태나무에 진분홍 꽃은 벚꽃이 바람에 지고 나면 활짝 피기 시작한다.
고추 고추를 생각하면 희비가 엇갈린다. 그건 고추밭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여름방학 때가 되면 붉게 익기 시작해 방학이 끝나면 텅 비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고추가 사남매를 가르쳤다고 하셨다. 없는 집에 푼돈도 주고. 고추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면 신이 나셨던 부모님. 밭이 온통 빨갰다. 고추를 따다말고 밭고랑에 앉아 이다음에 과학자가 돼서 고추씨를 죽이는 약을 발명하겠다던 남동생처럼 따고 돌아서면 또 빨간 밭이 참 야속했었다.
조팝나무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며 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한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꽃모습이 그랬다. 조를 공중에 흩뿌려놓은 것 같은 모습, 이름값을 하는 걸까. 조팝나무를 처음 본 것은 논두렁에서였다. 그러고는 산에도 들에도. 어디에서나 있었다. 담장에도 공원 울타리에도. 지금은 닳아빠진 빗자루 모양으로 피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오르다 꽃 무게에 늘어지는 고향에 그 조팝나무와는 다른 모습이다.
주목나무 찻길 옆 주목나무에 꽃이 폈다. 그냥 돌아설 수는 없어 핸드폰으로 찍었다. 이 나무와 나와의 인연이, 그렇게 어설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네 골목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검푸른 나무에 서기를 하는 빛을 따라가 보니 주목나무에 붉은 열매가 성탄 추리를 달아놓은 듯 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그 예쁜 모습을 담고 싶어 수십 장을 찍으며 애를 썼다. 똑같은 풍경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보다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