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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꽃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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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낭화 꽃을 보면 볼 빨간 사춘기 소녀가 떠오르곤 하는 꽃이다. 머리를 양 갈래로 따서 묶고 플레어스커트를 입었을 것 같은. 나풀나풀 소녀들이 줄넘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 늘 발랄하다. 어떤 이가 꽃 이름을 묻기에 ‘금낭화’라고 일러주니 망설임 없이 “돈 주머니 일까요? 한다. 그래서 다시 보니 세뱃돈을 챙겨 넣던 복주머니를 닮아있다. 오래전에 지어졌을 이름이니 설득력 있다.
부추꽃 부추 싹이 푸르게 돋기 시작하면 밥상이 풍성해졌다. 창칼로 도린 부추는 된장찌개에 넣어 끓이기도 하고. 반을 뚝 잘라 겉 저리를 무쳐 입맛을 돋우기도 했다. 벼 끄트머리 같던 곳에서는 끊임없이 부추가 자랐다. 자르면 또 그만큼 자라 우뚝 텃밭을 가득 채우곤 했다. 꽃대 위, 흰 꽃에 날아들던 나비로 텃밭은 꽃밭이었다.
파꽃 주말농장에 핀 파 꽃을 보고는 처음보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했었다. 굵직하게 튼실한 파 끝에 피는 꽃이 흰 양초 위에 타는 촛불 같다. 옛날 마당 한켠 갑바 위에서 말라가던 파 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족제비 싸리로 톡톡 두드리면 우루루 까맣게 쏟아져 내리던 파 씨 잘 말려 두었던 파 씨를 뿌린 밭에서는 실 같은 파가 끊길 듯 싹이 텄다. 빈틈없이 자란 실파를 드문드문 쏙아 뿌리째 씻어 상추쌈에 싸먹었었다.
느티나무 소문을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하고 쉼터이기도 한 마을 정자엔 느티나무가 있었다. 마을지킴이 같은 나무이기도 하다. 이름 따로 나무 따로.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알았다. 단풍 든 모습이 고와 무슨 나무일까 궁금했었는데 느티나무라는 걸 알고는 당황했었다. 느티나무는 내게 서낭당 같은, 상여를 보관하던 곳집 같은 나무였다. 알고 나니 참 많다. 나무가 크거나 작거나 이젠 잎 모양을 보고 안다. 단풍 든 잎에 빗살무늬가 참 아름답다. 푸릇하던 잎이 노랗게 물이 들면 느티나무 정자에 앉아 찐 고구마를 먹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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