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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배나무 4월 말쯤 북한산 둘레길에 하얀 꽃이 뭉실뭉실 구름처럼 푸른 나뭇잎에 떠 있다면 그건 팥배나무 꽃이 맞을 것이다. 한 겨울에 함박눈이 내려 쌓인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꽃향기는 그리 진하지 않다. 단내를 조금 보탠 엷은 밤꽃냄새다. 향기가 아주 엷어 그냥 지나치면 향기를 잡을 수 없을 듯싶다.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때만 아주 잠깐씩 잡아보는 향기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면 주렁주렁 달려있는 붉은 열매가 신기하다. 산이 텅 빌수록 더욱 무르익는 열매는 한겨울에서 초봄까지 넉넉하다.
흰 철쭉 흰색은 색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햇빛에 비친 잎이 맑고 투명하다. 꽃봉오리가 맺힌 모습은 모르고 지나치다 꽃이 피면 알게 된다. 족제비 싸리로 만든 울타리처럼 경계에서 활짝 폈다가 떨어진다. 거미줄을 늘여 거미가 줄타기 하듯 제 꽃술에 의지한 모습을 찍게 된다. 삶을 살며 절박한 순간에 지푸라기도 잡아보는 사람모양 같아 안쓰럽다. 툭 다 내려놓고 떨어져 내린 모습은 득도라도 한 듯 환하고 왠지 편안하다. 그 때문일까. 바닥에 떨어진 꽃을 보며 지나치다 돌아서게 되는 꽃이다.
철쭉 이른 봄 아파트단지에 제일 많은 꽃은 단연코 철쭉이다. 화사한 기운이 화단주변에 맴돌면 꽃샘추위도 물러간다. 철쭉이 많아서 그랬을까. 생각보다 사진이 없어 아쉬웠다. 언제든 찍을 수 있다는 흔함이 나태함으로 이어진 것이다. 색깔이 고와 향기가 없는 걸까. 벌과 나비를 보지 못했다. 지는 모습도 깔끔하다. 똑똑 떨어져 내린 꽃잎까지 예쁘다. 나무에서 피는 꽃. 얼마나 클 수 있을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명자나무꽃 명자나무 가지에선 잎도 꽃봉오리처럼 동글게 맺힌다. 꽃인 듯싶은 잎이 싹이 뜨고 나면 붉은 꽃이 줄줄이 폈다. 친구네 집 뒤뜰에선 고목나무에서 붉은 꽃이 피곤했다. 신선 같은 명자나무에서 피는 꽃을 산당화라고 불렀다. 명자라는 사람 이름에 익숙해서인지 꽃 이름으로는 낯설다. 꽃이 진 자리엔 왕 구슬만한 열매가 열리곤 했었는데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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