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 북한산 둘레길에 있던 향나무가 눈에 설지 않다. 옛날, 우리 집 울타리에 있던 향나무와 닮았다. 담장이 없던 우리 집 울타리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향나무가 빈틈없이 집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누렇게 낙엽 진 향나무 잎이 향나무 울타리 밑에 차곡차곡 깔려 있었다. 향나무에 찔릴까봐 울타리 주변에는 가지 않았었다. 끝이 뾰족했던 가시로 듬성듬성 빈틈이 있던 울타리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향나무가 장마가 지기 시작하면 늘어지기도 하고 그 비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면 톱으로 잘라 사랑방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고는 했었는데 향나무 가지가 타는 냄새가 얼마나 좋았던지. 향냄새로 눅진했던 집안이 맑아지고는 했다.
제사상에서 태우는 가늘게 쪼개놓은 향은 깊고 깊은 산속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잘라온 향나무로 만든 향으로 향불을 올리는 거라고. 아버지는 황금빛이 도는 향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지금도 아련한 그 향 타는 냄새가 참 좋다. 아버지가 만들어놓으셨던 건지. 아니면 장호원 장날 사놓은셨던 건지. 하얀 창호지에 쌓여있던 그 향을 제사 전 날 꺼내 살펴보시곤 하셨는데 종이를 풀기만 해도 요즘 쓰는 초록색 향과는 향기가 달랐다.
아궁이에서 타는 나무 냄새가 참 좋았는데 나무마다 타는 냄새가 달랐다. 참나무 잎은 후루루 타는 소리에 대한 기억만 있다. 반짝거리며 타던 솔잎 냄새 다음으로 좋았던 향기가 비 오는 날 눅진하게 타오르던 향나무 냄새다.
북한산 둘레길를 둘러 본다. 이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겠구나. 제사용으로는 쓰지 못하겠다. 사람 손은 피하겠구나 싶어 안심이다. 그때 우리집 향나무 울타리 밑은 보물창고, 금고로 이용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향나무 밑에는 차곡차곡 쌓아놓은 10원짜리 100짜리 동전이 딱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었다. 그 향나무 울타리를 지나다니던 이웃집 언니들이 용돈을 모아놓은 것이었을까.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살이를 떠났던 언니들은 낙엽 진 향나무 잎으로 금고 위치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