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했던 겹 안개꽃과는 다른 하얀 꽃이 어느 댁 텃밭을 꽉 채우고 피어있었다. 정말 안개 낀 것처럼 몽환적으로 폈던 꽃이다.
지나다닐 때마다 꿈을 꾸듯 밭에 앉아 사진을 찍고 꽃을 한참을 바라보다 서둘러 자리를 뜨고는 했었다. 하얀 꽃이 얼마나 예쁘던지.
그 꽃 이름이 궁금해 어느 날 문 앞에 계신 텃밭을 가꾸시는 그분께 여쭸더니 안개꽃이라고 하셨다. 화원에서 팔던 안개꽃과 다르다.
화원에 있던 안개꽃은 겹겹이 겹쳐 실타래 같은 안개가 낀 것 같은 꽃이라면 텃밭에 가득 폈던 안개꽃은 홑꽃으로 청초했다. 시냇물처럼 맑았다.
옛날에는 꽃다발을 만들 때 늘 안개꽃을 섞어 만들었다. 어느 꽃이든 잘 어울렸던 안개꽃이었다. 안개가 머리카락에 송글송글 맺히듯 다른 꽃들에게도 그랬다.
방울방울 맺힌 하얀 꽃이라서 그랬는지. 빨간 장미는 더 빨갛게 노란 장미는 더 노랗게 받쳐주던 안개꽃이다. 프리지아 꽃향기까지 감싸주던 안개꽃이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라는 말보다 요즘은 내 몸은 나도 몰라 라는 말을 더 실감하고 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이 정말 내 몸을 모르겠다 싶던 오늘.
쓸쓸해지고 허망해지다가 한때 지금보다 더 좋아했던 안개꽃이 떠올랐다. 마음자리엔 안개꽃을 좋아했던 그 아이가 여전한데 거울 속에는 그 아이가 없다.
본 적이 없는 안개꽃을 좋아하게 된 것은 소설책 속에 안개꽃을 보면서다. 환상 속에 꽃이 명동 한복판에 있던 커다란 양동이에 가득 담겨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때는 안개꽃이 사진 속에 꽃처럼 하얀색 밖에 없었다. 꽃다발에는 언제나 하얀 안개꽃이 들어갔었다. 안개꽃 없는 꽃다발은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연인에게 빨간 장미에 안개꽃을 풍성하게 넣고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하곤 했었는데 ‘죽을 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꽃으로 전한 말이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