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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꽃 벤자민 버튼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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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에 대한 기억은 한 겨울에 보리 싹을 밟았던 기억밖에 없다. 누런 보리를 자세히 보게 된 것은 아파트 단지 화단에 있던 보리를 보면서다.

 

 

보리 싹을 틔워 말려두었던 질금을 설날이 다가오면 맷돌에 갈아 질금가루를 탐방 우린 물로 된밥을 삭혀 가마솥에 끓여 감주를 만드셨다.

 

 

한 겨울이면 엄마는 질금가루를 우려 조청을 만들기도 하시고 엿을 고아 콩엿 땅콩엿을 만드시기도 하셨다. 보리에 대한 기억이라기보다는 싹튼 보리, 질금으로 시작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우리 동네에서는 이모작을 안 했던 모양이다. 텅 비었던 논을 갈아 물을 채운 논에서 발이 시리도록 찬물에 씌워진 하우스 속에서 벼씨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보리는 학교를 가는 길에 산허리쯤에 있던 어느 댁 밭에서 보리가 누렇게 익었었다. 우리 동네에선 귀했던 보리다. 우리 집에선 따뜻한 아랫목에서 보리 싹이 하얗게 트곤 했는데.

 

 

딱 그렇게 보리 싹을 틔워 조청을 만들고 감주를 만들만큼 심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산중턱에 있었던 그 논과 밭에 심으셨을까. 자급자족을 했던 우리 집에서 못 본걸 보면 물물교환을 하셨는지도.

 

 

보리 고개라는 말은 보리가 익어가는 5월이면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아 보리 고개라는 말이 생겼다던가. 그 보리가 지금은 아파트단지 화단에서 유치원 교재처럼 자라고 있다.

 

 

생활자체가 교육이었던 옛날과는 달리 농사일에서 멀어진 지금은 커다란 사각 통에 물을 가둬 벼를 심듯 화단에 꽃을 심듯 보리를 심어 싹이 트고 자라고 익어가는 걸 꽃 보듯 본다.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꼿꼿하게 자란 청보리가 꽃 못지않게 좋다. 청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이 벼가 누렇게 익어가던 들판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보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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