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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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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가리 한 여름, 박주가리 꽃이 뿌옇게 피고 있다. 흰머리 같은 꽃이다. 가늘고 힘없는 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열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이 주먹만 하게 커지던 열매. 먹는 것일까 하고 커가는 걸 지켜보다가 터진 열매를 보게 되었는데. 터진 껍질 사이로 바람에 날아가는 씨를 보며 흰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박주가리 꽃은 길가, 산길, 개울가에서 휀스를 타고 오르며 피기도 한다.
금송화 조금씩 다르다. 꽃잎 색깔과 꽃술 색깔이 다르고 잎 모양이 다르다. 사진을 보며 알았다. 금송화 꽃잎에 저녁노을이 조금씩 섞여 있다. 서산에 노을이 떠오른 건 당연했던 것이다. 노을이 땅에 펼쳐진 기분. 딱 그랬다. 밭 언저리에 서서 바라보던 찬란한 노을이 화단에 있었다. 서리가 내릴 무렵 꺾어 집안에 꽂아 놓아도 금송화 꽃은 참 오래 간다. 쑥 냄새와는 달리 알싸한 냄새가 꽃향기라고하기엔 독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금송화는 가지를 뻗어가며 꽃이 여러 송이가 계속 펴서 한포기가 푸짐하다. 우이천에는 여름부터 늦가을 서리 내릴 때까지 황금노을처럼 금송화가 핀다.
설악초 설악초 잎을 보면 눈 내린 겨울 사철나무 푸른 잎에 쌓인 눈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설악초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눈 쌓인 산을 보는 것처럼 시원하다. 잎이 꽃처럼 예쁜 설악초는 꽃도 눈송이처럼 금방 피면서 녹을 것 같은 모습이다. 불볕 같은 더위에서도 화단에는 바람 따라 설악초에서 눈보라가 날리기도 한다. 눈 설, 큰 산 악, 풀 초. 설악초 雪嶽草. 멀리서 보면 딱 큰 산에 눈 내린 모습. 설악초를 보면 느끼게 되는 그 느낌이 맞나 검색을 해보니 느낌은 같은 모양이다. 한 겨울, 설악초 모습은 눈이 녹다 언 것 같은 모습에 열매는 화초 호박 축소판이다.
배롱나무 7월 중순, 배롱나무 꽃이 폈다. 배롱나무 꽃이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8월이면 한창 피는 배롱나무 꽃은 새 가지에 나무줄기를 따라 한 송이씩 피고지고 한다. 한 송이 폈던 꽃이 지고나면 옆에 있던 동그란 꽃봉오리가 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핀다. 배롱나무 꽃은 백일은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오래된 가옥에 배롱나무가 많다. 빗자루로 잘 쓸어놓은 정갈한 마당에 그 집만큼 오래된 배롱나무가 고고하면서 깔끔했었다. 배롱나무에 그 품격 때문인지 요즘도 새로 짓는 건물에 배롱나무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울안 어디에 심어도 잘 어울리는 배롱나무는 진분홍색뿐만 아니라 보라색 꽃까지 참 예쁘다. 실증 난 스웨터를 풀어놓은 털실 같은 배롱나무 꽃잎은 시루에 담긴 콩나물 같은 꽃술로 더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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