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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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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꽃 봄이 제일 먼저 시작됐던 곳은 동네 앞에 있던 우리 집 복숭아밭이었다. 앙상한 가지에 꽃분홍색 꽃이 피면 온 동네가 환했다. 복숭아꽃이 폈다지고 나면 구슬만한 복숭아가 맺혔는데 신문지로 만들어 두었던 봉지로 싸기 시작했다. 복숭아밭은 종이봉투로 가득 찼다. 복숭아나무에 푸른 잎 사이로 편지 같은 종이가 비를 맞고 햇빛에 바래 누렇게 변해가면 종이봉투 안에 복숭아가 얼비쳤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없는 것 같지만 있는. 자라는 모습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크지 않은 듯 커가는 풋 복숭아.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골목길이 반들반들 얼어 엉거주춤하게 걷는 요즘. 눈길에 넘어지기라도 할까 조바심을 내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인지 봄에는 흡족하지 않던 복숭아꽃을 보며 마음까지 환해진다. 봄은 마음에서..
연꽃 어릴 적 불알친구들을 만나면 가는 곳이 있다. 옛날엔 마름이 많았던 성호저수지다. 마름을 건져 주먹만 한 돌로 때려 하얀 속을 먹고는 했다. 개망초 꽃이 하얗게 피어 바람에 나무 끼던 성호저수지 둑은 선생님과 함께 단짝 친구 손을 잡고 소풍을 갔던 곳이기도 하다. 넙적한 돌을 쌓아놓은 저수지 둑을 내려가면 마름 잎이 둥둥 떠 있었다. 소금쟁이가 떠다니던 저수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잿빛이었다. 속이 보이지 않아 두려웠던 건지. 전설 같은 이야기 때문인지. 성호저수지는 아이들끼리는 가면 안 되는 금기 된 곳이기도 했다. 쉬쉬하던 얘기가 들려오곤 했는데 저수지에는 잊을만하면 한 명씩 사람이 빠져 죽었다. 저수지는 공짜가 없다는 듯 사람을 데려갔다. 장마철에 비가 며칠이고 내리기 시작하면 갓난아이를 안고 동네..
종이꽃 기름종이처럼 반질반질한 꽃이 눈 속에서도 꼬장꼬장하다. 바삭바삭 종잇장처럼 소리가 날 것 같은 모습이다. 작은 공처럼 동글동글했던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면 날씨에 따라 꽃 모양이 다르다. 오므렸다가 폈다가. 날씨가 흐린 날은 활짝 폈던 꽃이 새 날개가 꺾인 듯 꽃잎을 밖으로 제키면서 로켓트처럼 하늘로 날아 갈 것 같다. 이른 아침 꽃을 보면서 날이 맑을지 흐릴지 짚어보곤 한다. 하루 종일 맑은 날은 활짝 핀 꽃들이 옆으로 퍼져 생기가 난다. 종이꽃만 봐도 날씨 점을 칠 수가 있는 것이다. 꽃이 참 오래 간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잎이 오므렸다 폈다가하며 그대로다. 그 꽃이 늘 그 꽃이라 흐릴까 맑을까 꽃을 보니 꽃술이 부실부실 터지고 있었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홀씨를 닮아간다. 며칠 더 있으면 ..
애기탑꽃 기억의 오류, 그런 것일까. 엄마랑 함께 걸을 때면 길옆에 있던 풀잎을 슬쩍 손으로 비벼 코끝에 대주시곤 하셨다.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던 향기, 그 잎을 보시며 박하라고 하셨다. 그 잎이 맞는데 검색을 해보니 박하는 다른 꽃이다. 애기탑꽃을 제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애기탑꽃으로 부르기로 한다. 잎에서 나는 향기가 꽃에서도 나는 걸까. 애기탑꽃 향기는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모양이다. 잘디 잔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벌과 나비가 꽃마다 날아든다. 백과사전을 찾아봐도 잎에서 향기가 난다는 말이 없다. 박하로 알고 있던 애기탑꽃은 잎에서 향기가 난다. 박하 종류도 참 많았다. 가을에 피는 꽃을 들국화라고 뭉쳐 불렀듯 엄마가 어린 시절에는 모두 박하라고 불렀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파란 풀잎을 흔들어 향기가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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