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을 찍고/꽃 벤자민 버튼

연꽃

728x90

 

어릴 적 불알친구들을 만나면 가는 곳이 있다. 옛날엔 마름이 많았던 성호저수지다. 마름을 건져 주먹만 한 돌로 때려 하얀 속을 먹고는 했다.

 

개망초 꽃이 하얗게 피어 바람에 나무 끼던 성호저수지 둑은 선생님과 함께 단짝 친구 손을 잡고 소풍을 갔던 곳이기도 하다.

 

 

넙적한 돌을 쌓아놓은 저수지 둑을 내려가면 마름 잎이 둥둥 떠 있었다. 소금쟁이가 떠다니던 저수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잿빛이었다.

 

 

속이 보이지 않아 두려웠던 건지. 전설 같은 이야기 때문인지. 성호저수지는 아이들끼리는 가면 안 되는 금기 된 곳이기도 했다.

 

 

쉬쉬하던 얘기가 들려오곤 했는데 저수지에는 잊을만하면 한 명씩 사람이 빠져 죽었다. 저수지는 공짜가 없다는 듯 사람을 데려갔다.

 

 

장마철에 비가 며칠이고 내리기 시작하면 갓난아이를 안고 동네마다 동냥하러 다니던 미친년 울음소리가 저수지에서 들린다고도 했다.

 

 

기괴한 얘기들은 저수지 물이 차서 넘칠 때마다 앞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하던 안개처럼 온 동네를 뒤덮곤 했다.

 

 

몇 십 년 만에 친구들과 함께 갔던 저수지는 물이 없었다. 가뭄이 들어 우리 집 앞 웅덩이 같은 저수지에는 물대신 연잎이 꽉 차 있었다.

 

 

도랑을 따라 흘러간 저수지 물은 물꼬를 터놓은 논에 물을 대주곤 했었는데 설성면 논농사를 지어주던 저수지는 물은 줄고 연이 대신했다.

 

 

논농사가 줄며 저수지가 작아진 것인지. 저수지가 작아져 논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것인지. 넉넉잡고 한두 시간 돌면 끝날 연못뿐이었다.

 

 

그 해에는 유독 가물었을지도 모른다. 논물만큼도 없어 질척질척 말라가는 연못에는 어쩌다 고여 있는 물속에 우렁이 고물고물 모여 있었다.

 

 

옛날에는 보지 못했던 연꽃을 보며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옛날 타령을 했다. 옛날엔 여기가 어디였더라를 찾으면서 기억을 되짚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저수지도 큰 기와집에 넓은 동네도 작아졌다. 밤이 되면 커다란 연꽃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소인국. 커져버린 몸속에 작은 아이들이 꿈틀대는 그런 하루였다.

한없이 작아지다 큰 나를 발견하고 싶어서인지. 친구들을 만나면 연꽃이 폈을 거라며 성호저수지를 찾곤 한다. 절기를 맞추지 못해 연잎만 보고 올 때도 있고, 연꽃은 지고 연자방이 벌집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다. 어쩌다는 보기 힘든 꽃이 연꽃이지 싶다.

 

728x90

'사진을 찍고 > 꽃 벤자민 버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레옥잠  (0) 2023.01.02
쥐손이풀  (0) 2023.01.01
꿀풀  (0) 2022.12.30
어리연  (2) 2022.12.28
종이꽃  (2) 2022.12.23
쪽동백나무  (0) 2022.12.19
때죽나무  (0) 2022.12.18
머루나무  (0) 20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