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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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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 원추리 산길에 봤던 그 원추리다. 원추리 꽃도 크게는 각시 원추리와 왕 원추리로 구분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내가 산길에서 봤던 원추리는 끝이 더 날렵하고 더 작았다. 그 원추리가 각시 원추리라고 한다. 각시 원추리는 주황색 꽃이 더 맑고 깨끗하다. 빛이 비출 때는 더 맑고 투명해진다. 줄기도 더 길고 난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산길에서는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각시 원추리 꽃이 폈었다. 이른 봄에 눌러놓은 듯 납작하게 올라오는 새싹은 연둣빛으로 산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면서 나물캐던 엄마 앞치마 속에 들어있었다. 각시라는 앞머리가 붙은 건 부인병치료에 좋아 붙은 이름일까. 알고 보면 산과 들에 나는 풀이 약초 아닌 것이 없는 것 같다. 새싹으로도 먹고 묵나물로도 먹고 뿌리째 캐어 약으로도 쓴다...
왕 원추리 산을 몇 고개를 넘어야 학교를 갈 수 있었다. 그 길에서 봤던 가녀리게 폈던 원추리는 각시원추리라고 한다. 엄마가 봄이면 뜯어 오셨던 산나물에 원추리 싹도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단지 화단을 꽉 채우며 나던 예쁜 싹은 왕원추리라고 한다. 산길에서 봤던 원추리와는 색깔도 다르고 꽃 크기도 다르다. 그렇게 큰 원추리꽃은 서울 와서 처음 본다. 화훼용으로 사랑받는 꽃 중에 하나가 왕원추리꽃이다. 봄이면 화단에서 봄이 왔다고 삐죽삐죽 고개를 내미는 싹 중에 대부분이 보라색 꽃이 피는 비비추 다음으로 많은 것이 왕원추리 싹이지 싶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사진도 많다. 보이면 찍었다. 싹이 날 때는 황량했던 화단에 새싹이 예뻐서 찍고 좀 자라서는 난초처럼 늘어진 싹이 예뻐서 찍었다. 화단에 푸릇푸릇 ..
상사화 상사화는 꽃이 먼저 핀다. 회초리를 꺾어 껍질을 벗겨 놓은 족제비싸리 같은 줄기에서 분홍색 꽃이 핀다. 줄기 끝에 빨간 꽃봉오리가 대림절 초에 촛불을 밝히듯 맺혔다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면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대 하나에 여러 송이의 꽃이 연달아 피기 시작하면 볼품없이 튼실하기만 했던 꽃대가 이해가 된다. 상사화. 꽃이 먼저 폈다가 지고 나면 그 자리에 잎이 난다고 했다. 꽃이 지고 난 뒤에도 그 자리에 자주 갔었는데. 상사화가 질 무렵이면 화단 주변에 꽃과 푸른 잎으로 꽉 들어찬다. 주변에 다른 꽃에 정신이 팔려 상사화 잎을 보지 못한 것이다. 연인의 그리움은 그토록 이방인은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이 지난 사진을 보면서 올해는 잎을 꼭 찍어야지 벼르다가 매해 그냥 지나고 만다. 그래서 꽃..
백리향 백리향은 꽃향기로 찾아낸 꽃이다. 맑은 향기가 너무 좋아서 어디서 나는 향기일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화단에서 만났다. 바닥에 잔디처럼 깔려 있던 꽃이 백리향이었다. 희뿌연 꽃 위를 날아다니던 나비가 환상적이었던 꽃이다. 몽환적이었다. 꽃을 찍기는 쉽지 않았다. 화단을 덮으면서 폈던 백리향 꽃을 화단 밖에서 어찌어찌 찍었다. 백리향 꽃이 피는 곳에는 빈공간이 없다. 줄기가 바닥을 덮으면서 꽃이 핀다. 벚꽃나무 사이로 어룽대는 햇빛 때문이었는지 5월에 희끗희끗 눈이 내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잔디밭에 토끼풀처럼 해마다 점점 자리를 넓혀가며 피던 백리향 꽃은 꽃보다는 향기로 사람을 부르고 나비를 날아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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