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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꽃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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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꽃 상추꽃이 노랗게 폈다. 텃밭에서 제켜먹던 상추가 꽃대를 올리더니 꽃이 핀 것이다. 상추는 뿌리째 먹지 않는다. 잎을 제켜먹다가 뻣뻣하게 세면 그냥 두어 쑥쑥 큰다. 다음해를 위해서일까. 상추꽃이 노랗게 폈다지고 나면 날아갈 것 같은 꽃씨가 맺힌다. 종묘사에서 상추씨를 사기보다 그 해에 상추씨를 받아두었다가 다음해에 뿌리고는 했다. 씨를 넉넉하게 뿌려 쏙아 먹으면서 드문드문 남겨가며 한여름까지 상추쌈을 푸짐하게 먹었다. 초여름쯤 뿌린 상추씨는 상추가 귀한 가을, 밥상에 오르곤 했다. 그때 먹는 상추는 여름상추 맛만 못하다고.
풍선초 7월 초, 창문 살을 타고 오르던 덩굴에서 하얀 풍선초 꽃이 피기 시작한다. 하얀 풍선초 꽃을 보면 삭정이를 태운 불에 구워먹던 벼이삭이 떠오르곤 한다. 가을이면 누런 벼이삭을 잘라 불에 구워먹곤 했는데 터지는 모양이 꼭 그랬다. 논에서 뽑은 벼이삭에서 껍질 위로 튀어나오는 흰 튀밥이 꼭 풍선초 꽃을 닮았다. 튀밥 같은 흰 꽃이 지고나면 어린 아이가 입으로 부는 풍선처럼 크기 시작한다. 빵빵하게 부푼 풍선초는 터지지 않고 남아 하늘에서 겨울에도 황금색으로 빛났었다.
분꽃 시계가 귀했던 시절, 저녁 밥 때를 알리는 꽃이라고 했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 저녁 밥 때를 알리는 꽃이라고 했다. 한여름에 달콤한 꽃향기와 함께 참 곱게도 피는 꽃이 분꽃이다. 분꽃은 씨가 콩처럼 야무지다. 동글한 씨는 미용으로 쓰였단다. 분꽃이란 꽃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분칠할 때 분. 백옥 같은 얼굴은 꽃씨를 곱게 갈아 만든 분이 준 선물이었다. 분꽃 향기가 좋았으니 그 씨를 갈아놓은 분은 얼마나 좋았을까.
강아지풀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콧수염을 붙이고 싶었던 걸까. 여린 티가 가시기 시작한 강아지풀을 쑥 뽑아 반으로 갈랐다. 절반으로 나눈 강아지풀을 벌려 입가에 갈라 붙이고 놀았었다. 찰리 채플린이라도 된 듯 으쓱대며 강아지풀만 보면 뽑고는 했다. 속눈썹 같은 강아지풀 사이로 통과하는 빛으로 사진이 신비롭다. 보도블럭 사이, 깨진 아스팔트 틈새, 조금이라도 흙만 있으면 있다. 사계절, 빛만 있으면 아침, 저녁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강아지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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