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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꽃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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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꽃 봄이 제일 먼저 시작됐던 곳은 동네 앞에 있던 우리 집 복숭아밭이었다. 앙상한 가지에 꽃분홍색 꽃이 피면 온 동네가 환했다. 복숭아꽃이 폈다지고 나면 구슬만한 복숭아가 맺혔는데 신문지로 만들어 두었던 봉지로 싸기 시작했다. 복숭아밭은 종이봉투로 가득 찼다. 복숭아나무에 푸른 잎 사이로 편지 같은 종이가 비를 맞고 햇빛에 바래 누렇게 변해가면 종이봉투 안에 복숭아가 얼비쳤다.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없는 것 같지만 있는. 자라는 모습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크지 않은 듯 커가는 풋 복숭아.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골목길이 반들반들 얼어 엉거주춤하게 걷는 요즘. 눈길에 넘어지기라도 할까 조바심을 내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인지 봄에는 흡족하지 않던 복숭아꽃을 보며 마음까지 환해진다. 봄은 마음에서..
애기탑꽃 기억의 오류, 그런 것일까. 엄마랑 함께 걸을 때면 길옆에 있던 풀잎을 슬쩍 손으로 비벼 코끝에 대주시곤 하셨다.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던 향기, 그 잎을 보시며 박하라고 하셨다. 그 잎이 맞는데 검색을 해보니 박하는 다른 꽃이다. 애기탑꽃을 제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애기탑꽃으로 부르기로 한다. 잎에서 나는 향기가 꽃에서도 나는 걸까. 애기탑꽃 향기는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모양이다. 잘디 잔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벌과 나비가 꽃마다 날아든다. 백과사전을 찾아봐도 잎에서 향기가 난다는 말이 없다. 박하로 알고 있던 애기탑꽃은 잎에서 향기가 난다. 박하 종류도 참 많았다. 가을에 피는 꽃을 들국화라고 뭉쳐 불렀듯 엄마가 어린 시절에는 모두 박하라고 불렀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파란 풀잎을 흔들어 향기가 나면..
플라타너스 프라타너스 묵은 열매가 새순이 나오는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빈 가지에 방울만 덜렁대던 겨울과는 또 다르게 멋스럽고 예쁘다. 프라타너스 나무가 너무 높아서 일까. 방울 같은 열매가 아이들 손을 피해 한해를 넘기고 콩알만 한 새 방울과 함께 달려있다. 학교운동장에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는 손가락만한 맹충이가 툭툭 떨어지고 나면 왕 구슬만 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었다. 까치발을 뛰어 따기도 하고 껑충껑충 높이뛰기를 하기도 하며 나무를 타고 올라가 실처럼 질긴 방울을 따서 제기차기를 했다. 공기놀이를 하듯 가지고 놀던 플라타너스 열매를 놀이가 끝날 쯤엔 공차기를 하고 놀아 밟은 열매가 털 뭉치처럼 흩어져 날렸다. 낙엽같이 누런 열매가 여린 새순과 함께 콩알만큼 작은 제 새끼와 같이 나무에 달려 있는 모습을..
눈개승마 시린 꽃 때문일까. 향기에 대한 기억은 없는데 눈개승마 꽃을 찍은 사진 대부분에 나비와 벌이 꽃 주변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눈개승마 꽃은 밤새 된서리가 내려 얼어붙은 새벽 같기도 하고 어느 해 한라산 꼭대기에서 본 새하얀 상고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말이 어눌해지다 생각도 무뎌졌던 건지. 옷깃을 여며도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워 꿈속 같은 새하얀 풍경이 예쁜 줄 몰랐던 한라산이다. 풀로 얼크러진 화단에 눈개승마를 보며 한라산 그 바람이 불어오는 듯 시리다는 생각을 했다. 한여름에 겨울 찬바람을 몰고 오는 꽃이다. 며칠 째 눈이 올 듯 말 듯 오락가락 하는 흐린 날씨에 이도저도 아닌 밋밋하면서 어두운 사진을 보며 쨍하게 빛나던 눈개승마 꽃이 떠올랐다. 하늘이 양어깨에 올라탄 것 같은 요즘, 눈이라도 펑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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