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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꽃 벤자민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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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석류가 농익으면 갈라져 붉은 알맹이가 보인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모습을 본 것도 같은데 나무에 달린 석류는 영 갈라질 것 같지가 않다. 아파트단지 화단이나 주택가에 어느 댁은 화분에 석류를 심어 놓기도 했다. 맑고 투명한 주홍색 꽃 어디에 그렇게 큰 열매가 숨어 있다 달리는 건지. 꽃보다 열매다. 석류 껍질을 벗기면 각을 이루며 빈틈없이 둥근 공간이 각진 열매로 꽉 차 있다. 큐빅 퍼즐 맞추듯 살짝 틀면 짙붉은 알갱이가 떨어진다. 석류 속은 다듬지 않은 원석으로 가득 찬 느낌이다. 음흉함이 없는 맑은 빛이다. 꽃빛이 투명하고 맑더니 열매가 보석처럼 속이 환히 비친다. 석류 껍질을 벗기고 옥수수 알을 떼어 놓듯 접시에 담으며 문득 “정해진 운명이었어.” 그렇게 정해졌다가 드러나는 것인지..
들깨 밭 지금은 들깨가 가득 찼던 들깨 밭보다는 깻잎에 익숙하다. 시장에 가면 노끈으로 묶어놓은 들깨 잎을 천원, 천오백원이면 살 수 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다른 쌈 채소와 함께 삼겹살을 싸먹으면 들깨향이 입안이 가득하다. 그 깻잎 향기가 이젠 들기름보다 익숙하다.    어느 해, 주말농장 들깨 밭에 들깨를 베지 않아 누런 들깨 대궁이 그 다음해 봄까지 있었다. 다 된 농사가 방치 된 것을 보면 농부가 탈이 난 것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10월 중순쯤 들깨가 말라 쏟아지기 전에 베어 놓는다. 들깨 대궁이 마르기 시작하면 갑바를 펼쳐놓고 들깨를 털었다.  그때는 들깨 밭이 참 많았었다. 학교 길에서도 들깨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여린 들깨 잎을 따는 걸 본 적은 없다. 연한 들깨 잎은 서울사람 몫이다..
갈대 개울에 무성한 풀이 갈대라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알았다. 갈대의 순정에 그 갈대가 우리 고향에 그렇게 많았는데. 우이천은 우이동에서부터 시작한다. 위쪽으로 갈수록 물 흐르는 곳에 그 물이 안 보일 정도로 갈대가 풀밭처럼 우거져 있다. 소꼴처럼 여리던 잎이 마디가 생기며 우이천을 꽉 채우고 있던 갈대는 장마가 지기 시작하면 그 장마 비에 쓸려 곤욕을 치르고는 한다. 그렇게 몇 고비를 넘기다가 일어선 갈대는 꽃을 피우는데 갈대는 가을보다는 겨울에 솜사탕처럼 부풀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흑설탕을 기계에 돌린다면 한 겨울 우이천에 갈대 같지는 않을지. 막대 끝에 솜사탕 같은 모습으로 우이천을 꽉 채우고 있는 갈대. 쌀쌀맞은 억새와는 달리 갈대는 푸근하다. 갈대꽃을 모아 이불 속에 넣으면 목화솜..
억새 억새는 제주 새별 오름에서 본 억새가 좋았다. 석양에 비치는 억새는 반짝반짝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첫 사진이 그곳 제주 새별 오름에서 찍은 억새다. 그때는 새별 오름에 억새꽃만 하얗게 펴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요즘은 풀을 자랄 새 없이 깎아서 그런지 둘레길에서는 억새를 보기 힘들다. 우이천을 걷다보면 둑에서 만날 수 있다. 벌초를 하며 일부러 남겨둔 것인지. 사람 손길이 덜 미친 곳에서 생각지 않게 만나는 억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단풍이 들기 시작할 무렵 산길을 걷다 보면 하얗게 핀 억새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새별 오름을 오르듯 찾아가야만 한다. 가을을 타는 걸까. 억새꽃이 하얗게 필 무렵엔 논밭이 텅 비는데 지금도 억새를 보면 허허롭다. 억새꽃이 휘청대는 모습은 늘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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