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아카시아 향기보다는 엷은 단내에 가을 벌초할 때 나는 풀냄새가 보태졌다. 회화나무 꽃이 아카시아꽃처럼 바닥에 떨어져 말라가던 그때 그 꽃냄새가 보태져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봉동 그 길에는 비에 젖은 회화나무 꽃잎으로 미끄러질 정도였다.
도봉동에는 회화나무가 아파트 단지 안에도 이 단지와 저 단지 사이에도 골목길에도 참 많다. 도봉산에서 쫒겨난 귀신들이 산 아래 도봉동으로 피신이라도 한듯 그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회화나무를 잔뜩 심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회화나무가 옛날에 그 아카시아나무 만큼이나 많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던 초록빛이 감도는 하얀 회화나무 꽃은 부적을 만드는 괴황지 재료라고 한다.
회화나무는 또 학문과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 많은 사찰과 학문하는 장소에 식재했다고 하는 걸 보면. 누원초 누원고 등하교길에 학교 건물보다 더 큰 회화나무는 귀기를 누르기 위한 나무라기보다 덕과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염원이 더 강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7월부터 계속 하얗게 피는 꽃을 보지 않았다면 키가 제법 큰 나무가 아카시아 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높은 가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잎이 아카시아 잎보다 조금 더 길쭉하고 도톰하다. 회화나무엔 가시가 없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씨방은 콩꼬투리랑 비슷하고 아카시아 씨방과는 많이 다르다.
중랑천 가로수에도 있던 회화나무는 마을 앞 느티나무처럼 쉼터로 자리잡고 있었다. 골목길, 회화나무 그늘 밑에는 의자가 있다. 낯설면서도 편안하다. 올해 같이 불볕 더위에도 회화나무 그늘 밑은 시원했다. 깊은 동굴을 걷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