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묘를 넓게 두른 울타리 옆에 늘어진 싸리꽃을 보며 연산군묘가 동네 뒷산에 있던 잘 다듬어 놓은 어느 댁 선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의 먼 이야기가 거리감을 확 좁혀오는 느낌이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 건 집주변에 늘 있던 싸리꽃이 거기 있어서다.
우리 집은 산 밑에 있었다. 아니 우리 동네가 산을 병풍처럼 두른 산속에 있었다. 그 때문인지 참나무 밤나무가 정원수 같은 산동네였다.
그 산동네에는 축축 늘어지는 싸리꽃이 참 많이 폈었다. 마당에 붉은 흙을 쓸던 긴 싸리 빗자루 대부분이 밭 주변에 심었던 녹색싸리 반 이 싸리나무 반.
그랬던 것 같다. 싸리나무를 많이 잘라 묶어 마당에 떨어진 낙엽이나 굵은 모래를 쓸어 내던 빗자루가 몽당 빗자루가 되면 어김없이 또 빗자루가 생기곤 했다.
싸리나무꽃은 낯설지 않은 꽃이다. 너무 많아서 그랬을까. 그때는 귀한 줄도 예쁜 줄도 몰랐던 싸리나무꽃이 그 붉은 보라색 싸리꽃이 참 예쁘다.
무성한 잎에 자잘한 꽃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비오는 날이었다. 빗방울을 달고 있는 싸리나무꽃은 처음 본 것 같다. 본적이 있었을까.
주변에 많다고 늘 거기 있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나물을 뜯어 오시면서 5월 단오 전에는 못 먹는 풀이 없다고 하셨다.
그 나물 속에 싸리나무 여린 싹도 있었을까. 꽃을 보고 나무를 알아가며 약초 아닌 약초는 없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제철에 나는 먹거리를 잘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