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박
오래전에는 그랬다. 물이 있고 흙이 있으면 잡풀이 우거지기 전에 씨를 뿌렸다. 돌로 금을 그어가며 너도나도 내 땅이 아니더라도 노는 땅이 있으면 논둑에 콩을 심듯 먹거리를 심었다.
왕숙천에 가시박 넝쿨도 그런 줄 알았다. 여린 잎을 따다가 쪄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당연히 호박넝쿨인 줄 알았다. 넓게 퍼진 넝쿨을 보며 호박꽃을 찾다가 참외 넝쿨인가? 오이 넝쿨인가?
노란 꽃이 보이질 않아 덜 익은 참외를 찾다가 오이를 찾다가 새끼손톱만 한 흰색에 가까운 연초록 꽃을 발견했다. 고개를 숙여 참외를 찾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 꽃이 부끄러운 듯 거기 있었다.
안동오이에 접붙이용으로 들여온 귀화식물이라니. 접붙이기에 실패하고 버려진 가시박이 하천에 사람이 심고 가꾼 듯 밭을 이뤘다. 가시박 넝쿨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잘 자라는 잡초 하나 없다.
또 제 터를 빼앗길까 두려워 잡초 하나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모양이다. 수꽃은 누런 흰색이고 암꽃은 연한 녹색이라는데 그럼 내가 찍은 꽃들은 암꽃인 셈이다. 꽃 하나가 눈에 띄니 넓적한 잎 사이로 꽃이 많다.
가시박꽃은 꿀이 많아 양봉 농가에 고마운 식물이라는데 벌과 나비는 없고 꽃마다 개미가 있다. 잎은 고라니나 야생동물이 먹기도 하며 호박잎처럼 쪄서 먹기도 한단다. 잎은 따간 흔적이 없는데 꽃줄기 끝에 꽃이 없다.
새소리가 요란하더니 가시박꽃을 따간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에 찍은 가시박꽃을 살펴보니 거기에도 꽃줄기 끝에 꽃이 없다. 똑 끊어간 흔적이다. 가시박꽃은 새 먹거리로 두고 가시박잎은 호박잎 따듯 따서 쪄 먹어봐야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