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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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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꽃 바람 따라 흔들리는 무꽃에 나비와 벌이 날아들었다. 꽃인지 나비인지. 주말농장에 한참을 앉아 바라보았다. 학교를 오갈 때마다 뽑아 손톱으로 밀어 까먹었던 그 무. 김장을 담고 움에 묻어두었던 겨울 무에는 싹이 있었다. 그 싹이 난 무 위 부분을 잘라 물에 담가두면 싹이 자랐다. 한 겨울 안방 TV 위에서 꽃대를 올려 폈던 무꽃도 예뻤다.
패랭이꽃 화단에 피어 있는 패랭이꽃들이다. 들에 핀 패랭이와는 다르다. 다양한 패랭이꽃을 보며 추억 속에 빨간 패랭이꽃을 생각하곤 한다. 마디가 있었던 패랭이꽃은 줄기를 똑 끊으면 깔끔하게 꺾였었다. 꽃잎도 야물어 상처받지 않아 좋고 교탁 꽃병에도 잘 어울렸었다. 화단에 꽃들을 보며 요즘은 자생력이 있는 야생화가 있긴 있을까한다. 사람이 물을 주며 키워서 그런 건지 하우스에서 재배한 꽃처럼 여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랭이꽃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꽃이다. 산과 들에 철마다 피어나는 패랭이꽃들은 어느 곳에서나 한결 같았다. 늘 그때 그곳에 가면 늘 그 맘 때 또 그렇게 변함없이 폈다지곤 했다. 요즘도 그 빨간 패랭이꽃이 있으려나하고 눈여겨봐도 아직 보지 못했다. 흙이 수시로 파헤쳐지는 서울에는 패랭이가..
뽕나무 뽕나무에 오디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뽕나무밭에서 따먹었던 기억이 있다. 개학을 하고나면 뽕나무 밭에 오디는 없었다. 그렇게 학교생활로 절기를 더듬곤 한다. 6월 초면 분유가루 같았던 꽃이 가무잡해지며 모래알을 붙여놓은 듯 익었던 것이다. 옛날에도 뽕나무는 참 컸었다. 오디가 달린 가지를 휘어지게 매달리며 따먹었다. 미처 휘지 못한 가지는 꺾이기도 하고 휘지 않는 가지에 오디는 포기하기도 하면서. 입술이 새까맣도록 따먹고 양은 도시락 뚜껑이 닫히지 않을 때까지 따오고는 했다.
엉겅퀴 팻말을 보니 약초 농장이란다. 밭에 무리지어 핀 엉겅퀴를 보고 놀랐다. 내게 엉겅퀴 꽃은 환상의 꽃이다. 진 보라색 바늘 같은 꽃잎이 그랬다. 꺾고 싶어 손을 댔던 적이 있다. 가시 돋친 잎사귀가 얼마나 표독스럽던지. 꽃받침은 끈적끈적 손에 달라붙어 다시는 꺾을 생각을 않던 엉겅퀴 꽃이다. 약초 농장에 있는 걸 보니 들에 꼿꼿하게 폈던 엉겅퀴는 약초였던 모양이다. 무리지어 핀 엉겅퀴 꽃 위에 날아다니던 흰나비 때문일까. 꿈을 꾸는 듯 했다. 여전이 꽃향기를 잡지 못한 걸 보면 그 보랏빛 꽃잎에 나비도 홀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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