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고 (396) 썸네일형 리스트형 화살나무 새순이 나기 시작하면 할머니들의 손을 피할 수는 없다. 손톱 끝에 잘려 어느 댁 밥상에 나물로 오르기도 하고. 눈에 띌까 두려운 듯 제 잎보다 더 푸른 꽃을 피우고는 별을 품고 우주선이라도 타고 하늘로 날아갈 듯 애를 쓰더니 붉은 단풍잎 사이로 홍등 같은 열매가 바람에 흔들린다. 한겨울, 열매가 꽃처럼 곱고 예뻐 지나가다 들리곤 했다. 꽃의 겸손함 때문일까. 열매로 초봄까지 주변이 환하다. 애기똥풀꽃 이른 봄부터 피기 시작해 늦가을 서리 내릴 때까지 핀다.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물가에도 길가에도 시멘트 갈라진 틈에 키가 제법 큰 꽃이라면 애기똥풀꽃이다. 애기똥풀꽃이 무리 짓는 곳은 흙이 많고 해가 잘 드는 곳이다. 족제비싸리 순을 끊어 손톱에 칠하듯 줄기를 끊으면 노란 물이 맺힌다. 그 색깔이 애기 똥 같이 노랗다고 해서 애기똥풀꽃이라고 한다. 박태기나무 앙상한 나뭇가지에 쌀 톨 같은 꽃망울이 붉게 얼굴을 내밀었다. 꼭 강낭콩을 다닥다닥 매달아 놓은 듯이 가지에 빈틈없이 핀다. 굵은 가지에 점점이 꽃눈이 맺히고 긴 가지 끝에는 새순이 돋고. 묵은 나뭇가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툭 터진 꽃 색깔이 참 곱다. 설익은 강낭콩 꼬투리가 마르면 박태기나무에 씨방 같을지도 모르겠다. 박태나무에 진분홍 꽃은 벚꽃이 바람에 지고 나면 활짝 피기 시작한다. 고추 고추를 생각하면 희비가 엇갈린다. 그건 고추밭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여름방학 때가 되면 붉게 익기 시작해 방학이 끝나면 텅 비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고추가 사남매를 가르쳤다고 하셨다. 없는 집에 푼돈도 주고. 고추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면 신이 나셨던 부모님. 밭이 온통 빨갰다. 고추를 따다말고 밭고랑에 앉아 이다음에 과학자가 돼서 고추씨를 죽이는 약을 발명하겠다던 남동생처럼 따고 돌아서면 또 빨간 밭이 참 야속했었다. 이전 1 ··· 90 91 92 93 94 95 96 ··· 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