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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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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중 시멘트로 포장된 길 어디에 빈틈이 있었던 걸까. 까마중이 옹골차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것이 까마중이다. 까마중이 까맣게 익기 시작하면 오가며 따 먹었다. 씨와 함께 입안에서 터진 달콤한 까마중은 많았다. 길옆에 특히 많았던 까마중은 아이들 군것질거리였다.
백일홍 참 오래 피어있는 꽃이다. 그래서 이름이 백일홍일 것이다. 꽃 색깔도 분명하고 꽃잎이 도톰해서 상처받지 않을 것 같다. 빨간 꽃잎 속에 산봉우리처럼 솟아올라 별처럼 떠있는 꽃술. 꽃잎으로 시선을 끌고 꽃술로 환하게 반겨주는 백일홍이다. 백일홍을 보면 우울했던 기분이 달아나고 꽃처럼 환해진다. 고단했던 삶에 위로가 되었을까. 백일홍은 엄마가 좋아하신다. 마당이 없어진 돌계단 위 화분에는 색색의 백일홍이 피곤 한다. 딸은 엄마를 닮아 가는지 잔잔한 꽃이 좋던 내가 백일홍이 좋다. 어느 해인지 유난히 백일홍에 나비가 요정처럼 꿈인 듯 많았었다. 몸을 숨기기에도 안성맞춤, 백일홍은 딱정벌레도 좋아하는 꽃이다. 꿀단지에 꿀도 넉넉한지 꽃을 고른 벌들은 꽃술에 머리를 박고 있다. 백일홍은 마음자리까지 넉넉하다. 날..
채송화 봄이면 자석 끝에 모래알 속에서 골라낸 쇠 가루 같은 씨를 뿌렸다. 마당 한 귀퉁이 꽃밭에 경계석 틈에서 제일 낮게 폈던 채송화. 채송화 새싹이 자라 손가락만해지면 잎을 따며 놀고는 했다. 가느다란 잎을 따서 외꺼풀 눈에 붙이며 쌍꺼풀을 만들었던 것이다. 쌍꺼풀에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부러웠던 걸까. 쌍꺼풀을 만들며 놀다보면 앙상했던 잎이 더 앙상해지고는 했었다. 빨강, 주황, 노랑, 분홍 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하면 꽃밭이 환해졌다. 사진 속에 꽃은 새롭다. 그냥 볼 때는 몰랐던 꽃술이 눈에 들어와서다. 꽃잎 속에 꽃술, 그 꽃가루를 잔뜩 매달고 있는 꽃술이 있어 꽃인지도. 꽃잎 속에 또 꽃이 피고 그 꽃 속에 또 꽃이 피고 있다는 느낌이다. 신기해서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비비추 아무것도 없던 빈 화단에 뾰족뾰족하게 올라오는 새싹은 비비추다. 비비추 싹은 불그스름한데 얼음이 덜 풀린 화단에서 반짝반짝한다. 비비추 싹이 나풀나풀 잎이 넓어지기 시작하면 춘곤증과 함께 봄이다. 비비추가 꽃대를 올리고, 긴 꽃대에 꽃망울이 맺히면서 초여름이다. 꽃대에 맨 아래 꽃이 폈다 지고 꽃대가 자라면서 보라색 꽃이 피기 시작한다. 늦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는데 꽃대가 자라면서 꽃이 피기 때문일 것이다. 맨 위 꽃까지 폈다 지고나면 가을이다. 후줄근한 꽃이 진 자리엔 씨방이 맺힌다. 꽃은 꽃대에 붙어 말라가며 진다. 그 때문인지 씨방은 꽃잎이 날아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비비추 꽃이 꽉 찼던 화단은 비비추 꽃이 지면서 겨울이 시작되고 황량하게 텅 비게 된다. 비비추 꽃은 매미가 허물을 벗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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