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를 가장 잡기 쉬울 때는 이른 아침이다. 책가방을 메고 논두렁길을 따라 학교를 갈 때면 논에 가득 찬 볏 잎 위에 앉은 잠자리들은 아침이슬에 날개가 푹 젖어 있었다. 죽은 듯이 앉아있는 잠자리 날개 위에서는 송글송글 맺힌 이슬이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끝이 뾰족한 잎이라면 잠자리가 다 앉아있었던 것 같다. 손만 뻗으면 다 잡을 수 있었다. 뛰어가지 않으면 지각을 할 수 밖에 없는 빠듯한 시간 때문에 보고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날지 않는 잠자리는 학교를 신경 쓸 만큼 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가 공중에서 무리를 지어 뿌옇게 날아다니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다 서늘해진 몸을 데우며 느긋하게 잠자리채를 휘둘렀다. 마음만 먹으면 곤충채집통이 비좁을 만큼 잠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무렵엔 텃밭이나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가엔 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치고는 했었는데 잠자리들은 그 울타리도 좋았던지 하나 건너 하나씩 앉아 있었다. 들쑥날쑥한 나뭇가지마다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가 앉아있었다. 조심조심 소리 없이 다가가 엄지 검지를 모아 잡고는 했다.
그렇게 마른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던 잠자리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듯싶다가도 되돌아와 앉고는 해서 놓쳤을 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밭 주변에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 집 주변에 있던 울타리는 딱 어린아이들 가슴높이였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은 잠자리채를 휘두르다 지칠 때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잡으러 달려가고는 했는데. 그 소리에 놀라 휙 날아가는 잠자리를 보며 울다 되돌아와 앉는 잠자리를 보고 웃다 다가가기를 반복하며 제 엄마가 그랬듯 엄지검지를 모아 쫒아 다녔다.